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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나무 : 2023,06,21 18:47   |   조회수 : 96
“메를린, 어쩌면 좋죠?”

다채로웠던 정원의 색은 어느덧 푸르게 물든 뒤다. 달콤함 봄 내음은 떠나간 지 오래였다.

신입생들이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할 무렵.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우울해 했다.

화이트는 오르핀관 인근에 있는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마른 풀밭에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메를린 아스트레앙에게 고충을 호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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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었다. 이것도 호위 기사 임무의 일환으로 봐야 할지 메를린은 이제 모르게 되었다.

“저 때문에 아이작 선배가 안 좋은 소문에 시달리는 거…, 선배가 난봉꾼이라는 소문이요. 이성으로서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그냥 존경해서 좋아한다는 의미로…, 그런 감정으로 우승 소감을 말한 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심한 얼굴로 두 손을 부들부들 떠는 화이트.

공신제 때 개최됐던 미녀 콘테스트 이야기였다.

화이트는 1위를 차지하며 이번 공신제에서 메르헨 아카데미 미의 여신으로 선정되었다.

그날 우승 소감으로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 아이작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이 학생들에게는 의도치 않은 의미로 전달된 듯했다.

─ ‘제가…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 이 모든 영광을 아이작 선배님께 돌립니다.’

‘좋아하는 분’이라는 표현이 문제였다.

‘Like’냐, ‘Love’냐.

학생들은 자극적인 화제를 선호하며, 많은 이가 아이작이 얼마나 매력적인 남학생인지 알고 있었다.

외모는 준수하며, 재능과 능력은 출중하며, 노력의 대가이며, 유망하며, 학생 나이 치고는 성숙하기까지 하므로…. 많은 여학생이 아이작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단지 루체가 내뿜는 위압감이 굉장히 강력했기에 대부분의 여학생은 그 풋풋한 마음을 꾸역꾸역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에 대고 화이트는 진지한 얼굴로 ‘좋아하는 분’이라는 표현을 써 버렸고, 이미 그와 엮여 있던 두 여학생, 루체와 도로시까지도 불을 지펴버렸으니…. 작년에 사그라졌던 ‘아이작은 난봉꾼이다’라는 소문이 재점화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의 우승 소감은 자연스레 아이작을 향한 ‘Love’의 의미로 비치고 말았다.

아이작이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화이트가 그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Like’ 쪽에 훨씬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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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할걸…. 화이트는 며칠째 후회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작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무녀와 싸움을 벌이고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화이트가 사건 관계자로서 불려가고 들은 바, 무녀는 화이트를 들먹이고 자작극을 벌였다고 했다.

아이작은 화이트 자신을 위해… 동방국의 지배자이자 마력량 S급의 천재, 무녀와 싸운 것이 틀림없었다.

그 탓에 화이트가 느끼는 죄책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끝내 메를린에게 고충을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그건, 괜찮지 않겠습니까? 제가 아는 아이작 공은 사려가 깊으신 분입니다. 그 정도로 실망하실 분이….”

메를린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몹시 불명예스러운 소문이지 않은가.

메를린 자신이 난봉꾼이라는 소문의 당사자였다면, 당장 그 소문의 원흉을 찾아가 목을 베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화이트의 우승 소감을 누가 제대로 받아들였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보고 들은 걸 제멋대로 해석하니까. 이미 소문이 그런 식으로 퍼졌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 경우엔 어떨까. 화이트가 부주의했던 건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그녀의 잘못으로 봐야 할지 메를린은 판단에 애를 먹었다.

“아이작 공과 대화를 잘 나누면 해결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대부분의 갈등은 대화로 해결되니까요, 대화.”

메를린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뭐가 어찌 됐든 결국엔 아이작과 화이트 사이의 문제였다. 아이작이 별 말 없이 넘어가 주면 될 일이었다. 소문이란 금세 잠잠해질 테니.

문제는, 그랬으면 화이트의 고충이 지금까지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화이트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만 메를린도 보셨잖아요. 요즘 아이작 선배가 절 피하는 거. 말도 잘 안 섞고, 매번 단답하고…. 사과하고 잘 풀린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이가 멀어진 기분이 든다고요오….”

최근 아이작은 화이트에게 형식적인 태도만 취하고 있었다.

며칠 전, 화이트는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작에게 사과했다. 그는 네 잘못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며, 오히려 자신을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화이트는 일이 잘 풀렸다고 철석같이 믿고 안도하고 있었으나….

이후, 만나면 교육하고 끝. 곧바로 해산.

화이트가 사적인 화제를 꺼내면 아이작은 ‘응’, ‘어’, ‘그래’ 따위의 단답으로만 반응할 뿐이니 일상적인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날이 없었다.

사실은 아이작이 7성급 원소 마법을 익히는 데 신경을 기울이고 있어서 그런 것뿐이었으나.

그의 친절한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화이트는 ‘날 불편해하고 있어…’라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교우는 아이작 선배다. 그 선배와 사이가 멀어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이유가 있겠죠.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만약에요.”

“예.”

“만약 아이작 선배가 절 불편해 하셔서, 결국엔 절 떠나려 한다면…. 전 어쩌면 좋죠?”

사람은 친했던 사람이 불편해지면 서서히 거리감을 두다가 한순간에 떠나버리곤 한다. 화이트는 그게 걱정이었다. 요즘 자꾸만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아이작이 결국에는 제 곁을 떠나버릴까 봐.

“아이작 공께서 화이트 황녀님을 두고 어떻게 떠나시겠습니까? 화이트 황녀님을 두고 무녀와 싸우기도 하신 분인데.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그렇겠죠…?”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을 필욘 없지요.”

“그렇겠죠오….”

화이트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귀엽게 느낀 메를린은 소리 없이 웃었다가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곧 아이작 공께 가르침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주눅 들어서 되겠습니까?”

“주눅 안 들었어요, 그냥 마음이 아픈 거지. 제가 잘못했다면 제가 노력해야겠죠….”

화이트는 기운 없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작 선배 뵈러 갈까요?”

* * *

수국 정원 구석. 화이트의 바람 원소 마법이 호수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화이트, 잠깐 쉬어.”

“아뇨, 아직 괜찮을 것 같아요! 더 할 수…, 으헉, 코피!”

“잠깐 쉬라니까.”

화이트는 평소보다 단련에 더욱 열을 올렸다. 내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그런다는 건 대번에 알아챘지만, 목적이 뭐든 간에 좋은 현상이었기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간 끝. 수고했어.”

“헤엑, 헤엑…! 끝…!”

오늘치 교육을 마친 뒤 [바위 생성]으로 바위 의자를 만들어 주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화이트는 힘없이 바위 의자에 앉고 숨을 골랐다.

그 틈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양피지 5개를 가져와 화이트에게 건넸다. 모두 두루마리 형식으로 말아둔 채였다.

“받아, 숙제야.”

화이트는 당황하며 양피지를 품 안에 가득 받아들였다.

“아, 아이작 선배, 오늘 왜 이렇게 숙제가 많아요…? 평소엔 1개만 주셨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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